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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법 말고 ‘세상’이랑 싸우셔야 합니다.” (어느 실패한 자영업자의 검찰개혁 라떼) 요즘 TV만 켜면 ‘검찰개혁’ 얘기로 시끄럽습니다. 수사권이니 기소권이니, 중수처니 뭐니…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려운 단어만 난무합니다. 저 같은 장사치는 그런 높은 분들 싸움에 끼어들 깜냥도 안 되지만, 그분들이 말하는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십수 년 전, 제 첫 가게를 말아먹었던 그 변호사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라 속이 쓰립니다.그때 저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에 맞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젊은 사장이었습니다. 명백한 본사의 잘못이었고, 계약서상으로도 제가 이길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사 측 변호사는 법정에서 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재판이 끝나고 복도에서 마주친 제게 이런 말을 건넸죠.“사장님, 사장님은 법이랑 싸우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랑.. 2025. 9. 10.
“이번엔 진짜”라는 그놈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9.7 부동산 대책과 걸이형의 꿈) 다들 ‘9.7 부동산 대책’ 얘기로 떠들썩하더군요. LH가 직접 땅 장사 안 하고 아파트를 지어서 공급 속도를 올리겠다, 수도권에 5년간 135만 호를 착공하겠다… 숫자는 참 거창합니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번엔 진짜 집값을 잡네, 못 잡네 갑론을박을 벌이는 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까맣게 잊고 있던 20년 전 그놈 목소리가 떠오릅니다.“사장님, 이번엔 진짜입니다. 여기만 개발되면 1년 안에 최소 두 배는 봅니다.”양복 깃 반반하게 세운 30대 청년의 눈은 유난히 반짝였습니다. 반짝이는 눈과 번지르르한 자료에 홀려, 제 분수도 모르고 가게 보증금까지 빼서 ‘진짜’라는 그 땅에 묻었더랬죠. 결과가 어땠냐고요? 그 땅, 지금도 제 속처럼 허허벌판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진짜’.. 2025. 9. 10.
결국 나를 살린 것은 잘 나갈 때 모은 돈이 아니라, 망했을 때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쉰 넘어 실패의 쓴맛을 제대로 본 자영업자, 걸이형입니다.한때는 저도 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제 가치를 증명하고, 닥쳐올 모든 위험을 막아줄 유일한 방패라 믿었습니다. 가게가 잘 될 때, 제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비싼 밥을 사주면 엄지를 치켜세우던 후배, 명절마다 과일 상자를 보내오던 거래처 사장. 저는 그들이 제 ‘인맥’이자 든든한 ‘자산’이라 착각했습니다.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성공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그 많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더군요. 쌓아 올린 통장 잔고는 무섭게 녹아내렸고, 전화기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위로를 건넬 줄 알았던 이들은 제 탓을 했고, 도움을 청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들은 아예 등을 돌렸습니다. 차가운.. 2025. 9. 7.
은행은 맑은 날에만 우산을 빌려줍니다. (50대 자영업자의 대출 분투기) 가게 창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저 비를 다 맞고 걸어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네요. 문득 오래전,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은행 문 앞에서 흠뻑 젖은 채 서 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비’란 갑작스러운 위기를, ‘우산’이란 절실한 돈을 의미하겠지요. 그리고 저는 뼈아픈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은행은 비 오는 날이 아니라, 해가 쨍쨍한 맑은 날에만 우산을 빌려준다는 냉혹한 진실을 말입니다. 그때 저는 제법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주인이었습니다. 가게를 열 때만 해도 제 사업계획서는 빛이 났고, 매출 전망은 장밋빛이었습니다. 은행은 그런 저를 보고 ‘사장님, 사장님’하며 VIP 대접을 해줬습니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 지점장이 직접 찾아와 제 가게의 인테리어를 칭찬하며 “저희가 든.. 2025. 8. 29.
손님들이 지갑을 닫았다고요? 가격부터 내리면 가장 먼저 망합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가 춤을 춥니다. 오후 세 시, 가장 나른하고 또 가장 잔인한 시간입니다. 텅 빈 가게의 적막함이 심장을 쿵 하고 내려찍는 듯합니다. 이럴 때 사장님들의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맴돌고 있을지 저는 잘 압니다. ‘할인’, ‘세일’, ‘특가’… 벽에 커다랗게 써 붙이면 금방이라도 손님들이 몰려들 것 같은 달콤한 유혹이죠. 하지만 뼈아픈 실패를 겪어본 선배로서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그 유혹은 독이 든 성배입니다. 가장 먼저 망하는 지름길로 올라타는 급행열차표와 같습니다. 십수 년 전, 저는 동네 골목에서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했었습니다. 매일 아침 직접 끓이는 토마토소스의 향긋함과 손으로 반죽한 생면의 쫄깃함에 제 인생을 걸었죠.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 2025. 8. 29.
세부 공항의 밤, 주머니 속 나무거북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안녕하십니까, ‘걸이형’입니다. 여행의 끝, 공항의 밤2025년의 어느날 세부 막탄 국제공항의 밤은 유난히 소란스러웠습니다. 며칠간 우리 가족을 감싸주던 달콤하고 나른한 공기는 간데없고,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이별을 재촉하는 안내 방송만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손에 쥔 한국행 비행기 표는 마치 치열한 현실로 돌아오라는 ‘소환장’처럼 느껴졌습니다.아내는 애써 웃으며 “그래도 집에 가는 게 좋긴 하다”고 말했지만, 눈가엔 아쉬움이 역력했습니다. 아이들은 남은 페소를 털어 마지막 기념품을 사느라 분주했죠. 그 북적임 속에서 문득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자, 딱딱한 것이 만져졌습니다. 호핑투어 선착장에서 끈질긴 상인을 이기지 못해 샀던 조악한 모양의 나무거북이었습니다. 아내는 “저런 걸 뭐 하러 사”라며 핀잔을 .. 202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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