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9.7 부동산 대책’ 얘기로 떠들썩하더군요. LH가 직접 땅 장사 안 하고 아파트를 지어서 공급 속도를 올리겠다, 수도권에 5년간 135만 호를 착공하겠다… 숫자는 참 거창합니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번엔 진짜 집값을 잡네, 못 잡네 갑론을박을 벌이는 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까맣게 잊고 있던 20년 전 그놈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사장님, 이번엔 진짜입니다. 여기만 개발되면 1년 안에 최소 두 배는 봅니다.”
양복 깃 반반하게 세운 30대 청년의 눈은 유난히 반짝였습니다. 반짝이는 눈과 번지르르한 자료에 홀려, 제 분수도 모르고 가게 보증금까지 빼서 ‘진짜’라는 그 땅에 묻었더랬죠. 결과가 어땠냐고요? 그 땅, 지금도 제 속처럼 허허벌판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진짜’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은 사기꾼이라는 걸요.
정부 정책을 사기꾼에 비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이번엔 진짜’라는 말에 담긴 비장함과 절박함이 그때 그 청년의 반짝이는 눈을 떠올리게 할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부동산 정책은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문제가 터지면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이번엔 확실하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시장은 언제나 정부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았죠.
그때나 지금이나, 저 같은 서민이 부동산으로 돈 벌겠다는 건 언감생심입니다. 그저 내 식구 편히 몸 뉘일 집 한 칸, 내 작은 가게 하나 맘 편히 운영할 상가 한 칸이면 족한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정책이 나올 때마다 온 동네가 들썩이니, 가만히 있다간 벼락거지가 될 것 같아 불안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조급해집니다.
이번 ‘9.7 대책’의 핵심은 공공, 즉 LH가 총대를 메겠다는 겁니다. 땅을 민간 건설사에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대신, 직접 집을 지어 싸고 빠르게 공급하겠다는 취지는 백 번 옳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라떼는 말이죠… 그 좋은 취지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더군요.
“가장 좋은 의도가 늘 최상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 앨런 그린스펀 (前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과거에도 공공 주도 공급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주까지 하세월이었고, 막상 들어가 살려고 보면 교통도, 학교도, 병원도 없는 허허벌판인 경우가 많았죠. LH 직원들은 땅 투기나 하고 있었고요. 20년 전 사기꾼 청년은 눈이라도 반짝였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과연 내 집 마련에 간절한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물론 대출을 더 옥죄는 내용도 포함됐더군요. 규제지역 LTV를 줄이고, 임대사업자 대출을 막는답니다. 빚내서 집 사는 투기꾼은 막아야죠. 하지만 정말 돈이 필요한 실수요자, 대출 없이는 가게 월세도 내기 벅찬 저 같은 자영업자들은 어떡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는 더 견고해지고, 저 같은 사람들은 사다리조차 걷어차이는 건 아닌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정책의 성공은 결국 ‘신뢰’에 달렸습니다. 20년 전, 제가 사기꾼의 반짝이는 눈이 아니라 그의 말을 믿었던 것처럼, 우리 서민들은 정부의 말을 믿고 싶어 합니다. 부디 이번 ‘9.7 대책’은 ‘이번엔 진짜’라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기를, 그래서 20년 뒤 어떤 자영업자가 저처럼 씁쓸한 ‘인생 라떼’를 마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 걸이형 드림]
저의 꿈은 소박합니다. 번듯한 강남 아파트도, 시세차익 수십억짜리 건물도 아닙니다. 그저 아내와 함께 저녁거리를 사들고 걸어갈 수 있는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매일 아침 웃으며 셔터를 올릴 수 있는 작은 가게 하나. 그것이 제 실패한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자 꿈, ‘걸이형 드림’의 전부입니다. 이번 정책이 부디 저의 이 소박한 꿈을 짓밟는 또 하나의 ‘헛된 희망’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