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창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저 비를 다 맞고 걸어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네요. 문득 오래전,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은행 문 앞에서 흠뻑 젖은 채 서 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비’란 갑작스러운 위기를, ‘우산’이란 절실한 돈을 의미하겠지요. 그리고 저는 뼈아픈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은행은 비 오는 날이 아니라, 해가 쨍쨍한 맑은 날에만 우산을 빌려준다는 냉혹한 진실을 말입니다.
그때 저는 제법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주인이었습니다. 가게를 열 때만 해도 제 사업계획서는 빛이 났고, 매출 전망은 장밋빛이었습니다. 은행은 그런 저를 보고 ‘사장님, 사장님’하며 VIP 대접을 해줬습니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 지점장이 직접 찾아와 제 가게의 인테리어를 칭찬하며 “저희가 든든한 사업 파트너가 되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순간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그 온기는 제 꿈이 아니라, 제 가게의 담보 가치를 보고 피어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요.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가게가 자리를 잡을 무렵,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졌습니다. 건물 전체에 배관 문제가 생겨 몇 주간 장사를 접어야 했고, 그 사이 월세와 직원 월급 같은 고정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예전에 명함을 건넸던 은행 직원을 찾아갔습니다. 창구의 공기는 그날따라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의 환한 미소는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뭉치를 요구하더군요.
그날부터 저의 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매출이 급감한 재무제표,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희망만 가득한 사업계획서, 세금 체납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수십 장의 서류들. 책상 위에서 그 서류더미와 씨름하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희망을 품고 서류를 제출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보완서류를 요청받아 다시 밤을 새우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은행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제 가게의 운명이 타인의 손에 달렸다는 무력감에 숨이 막혔습니다.
결과는 한 통의 싸늘한 전화로 통보되었습니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최근 매출 감소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심사 기준 미달입니다.” 가장 돈이 필요할 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이 잔인한 현실 앞에서 저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맑은 날에 빌려주겠다던 그 우산은, 정작 비가 쏟아지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날 밤, 텅 빈 가게에 홀로 앉아 깜깜한 창밖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결국 저는 그 비를 온몸으로 다 맞고 쓰러져야 했습니다.
"은행의 문턱은 내 가게의 바닥보다 차가웠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꿈이 아니라, 당신의 숫자를 보고 돈을 빌려줍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돈을 빌리는 기술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버티는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장님들께 제 실패담을 거울삼아 세 가지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나만의 저수지’를 만드십시오. 가뭄을 대비해 물을 가두는 것처럼, 가게가 잘 될 때 수익의 최소 10%는 무조건 떼어 비상금 통장에 저축해야 합니다. 은행이 아니라, 사장님 스스로가 위기 때 기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언덕이 되어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저축이 아니라, 미래의 내 존엄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둘째, 숫자를 지배하십시오. 재무제표, 손익분기점 같은 어려운 단어에 겁먹지 마십시오. 당신 가게의 의사는 바로 당신입니다. 매일 밤 10분이라도 투자해 그날의 매출과 비용을 들여다보십시오. 숫자에 밝아야 내 가게에 먹구름이 끼는 것을 먼저 알아채고 작은 감기일 때 미리 약을 쓸 수 있습니다.
셋째, 신용은 맑은 날에 닦는 유리창입니다. 절대 연체하지 마십시오. 사소한 공과금이라도 제날짜에 내는 습관이 내 신용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패입니다. 신용은 하룻밤에 쌓이지 않습니다. 평소에 투명하게 닦아놓은 이 유리창이,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 정책자금 같은 한 줄기 빛이라도 더 들어오게 할 겁니다.
은행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만의 생리가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 가게를 지켜줄 마지막 우산은, 결국 내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장님들께서는 갑작스러운 비를 대비해 어떤 우산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