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만 켜면 ‘검찰개혁’ 얘기로 시끄럽습니다. 수사권이니 기소권이니, 중수처니 뭐니…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려운 단어만 난무합니다. 저 같은 장사치는 그런 높은 분들 싸움에 끼어들 깜냥도 안 되지만, 그분들이 말하는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십수 년 전, 제 첫 가게를 말아먹었던 그 변호사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라 속이 쓰립니다.
그때 저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에 맞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젊은 사장이었습니다. 명백한 본사의 잘못이었고, 계약서상으로도 제가 이길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사 측 변호사는 법정에서 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재판이 끝나고 복도에서 마주친 제게 이런 말을 건넸죠.
“사장님, 사장님은 법이랑 싸우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랑 싸우시는 겁니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본사는 국내 최고 로펌을 썼고, 그 로펌 출신 전관들이 검찰과 법원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저의 ‘정의’는 그들의 ‘관계’ 앞에서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검찰은 본사에 대한 고소는 각하했고, 오히려 제가 본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역으로 기소 의견을 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고 힘 있는 자는 죄를 짓고도 당당하고, 돈 없고 힘없는 자는 죄가 없어도 죄인이 되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그때 처음 뼈에 새겼습니다.
“법의 거미줄은 힘없는 파리만 잡을 뿐, 힘 있는 말벌은 찢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 아나카르시스
지금 와서 검찰개혁을 논하는 저분들은 과연 저 같은 사람의 절망을 알까요? 검사가 수사를 하든, 경찰이 수사를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여전히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칼을 휘두를 것이라는 불신입니다. 그 칼이 향하는 방향은 법전이 아니라, 전화 한 통, 식사 한 끼로 정해진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검찰개혁의 본질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법대로’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 저 같은 서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수사 주체가 천 번 바뀐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저 또 다른 ‘힘 있는 집단’이 생길 뿐이겠죠. 부디 이번만큼은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길, 십수 년 전 한 자영업자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진짜 ‘세상’의 변화이길 바라봅니다.
[☕ 걸이형 드림]
저의 꿈은 소박합니다. 번듯한 강남 아파트도, 시세차익 수십억짜리 건물도 아닙니다. 그저 아내와 함께 저녁거리를 사들고 걸어갈 수 있는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매일 아침 웃으며 셔터를 올릴 수 있는 작은 가게 하나. 그것이 제 실패한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자 꿈, ‘걸이형 드림’의 전부입니다. 법이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돈이 아니라 정직이 존중받는 세상에서 이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