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에 대해 아시는지요. 저 같은 50대 자영업자에게 ‘스마트 스토어’, ‘스마트 오더’ 같은 말들은 따라가기 벅찬 최신 유행어와 같습니다. 그 욕망이 제 가게를 한순간에 K팝 댄스홀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얼마 전 가게를 찾아온 딸아이 손에 들린 작은 상자였습니다. “아빠, 요즘 장사는 어때?”라며 안부를 묻던 딸은, 계산대 위에 낡은 CD 플레이어를 보더니 혀를 찼습니다. “아빠, 아직도 이걸로 음악 들어? 요즘 사장님들은 다 말로 하는 거 몰라?” 그러면서 건넨 것이 바로 손바닥만 한 AI 스피커였습니다. 딸은 직접 시범을 보였습니다. “헤이 AI, 비 오는 날 어울리는 재즈 틀어줘.” 그러자 딸의 맑은 목소리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목소리 하나로 가게의 분위기를 지휘하는 우아한 제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저는 의기양양하게 그 기계를 계산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설치했습니다.
문제는 제 ‘아날로그적인’ 혀와 기계의 ‘디지털적인’ 귀 사이에 존재했던 거대한 소통의 장벽이었습니다. 저는 손님이 가장 적은 한가한 오후, 연습 삼아 기계에 첫 명령을 내려보기로 했습니다. 가게의 격조를 한껏 높여줄, 제가 가장 아끼는 ‘쳇 베이커’의 재즈 음악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점잖고 지적인 목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하며 스피커에 말했습니다. “헤이, AI. 챗 베이커 음악 좀 틀어줄래?”
상냥하지만 영혼 없는 기계음이 답했습니다. “네. 주변의 ‘채식 베이커리’를 찾아 드릴까요?” 시작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니! 가수 이름! 챗! 베! 이! 커!”라고 힘주어 다시 말했습니다. 잠시의 정적 후, 스피커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들렸습니다. ‘성공이구나!’ 뿌듯한 미소가 제 입가에 번지는 바로 그 순간, 제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찢고 터져 나왔습니다. “자, 모두 뛰어! 신나는 최신 댄스 차트,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쩌렁쩌렁한 기계음과 함께 심장을 때리는 전자 비트가 제 작은 카페를 강타했습니다. 조용히 책을 읽던 손님 한 분이 화들짝 놀라 커피를 쏟을 뻔했고,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던 학생은 헤드폰을 벗어 던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당황한 저는 이성을 잃고 스피커에 소리쳤습니다. “아니야! 취소! 조용히!” 그러자 AI는 제 다급한 목소리를 새로운 명령으로 인식했나 봅니다. “네! ‘조용필’ 님의 ‘여행을 떠나요’를 재생할게요!” 경쾌한 K팝 아이돌 음악에 이어, 온 국민의 애창곡이 터져 나오자 가게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스마트폰 앱으로 음악을 끄려 했지만, 와이파이 연결은 왜 그리 느린지. 결국 저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습니다. 계산대 뒤로 달려가 AI 스피커의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습니다.
“최신 기술을 향한 늙은 열정은, 종종 젊은이들의 웃음보를 터뜨리는 가장 확실한 기폭제가 된다.”
- 50대 자영업자 걸이형의 ‘인생 라떼’ 한 모금 -
음악이 뚝 끊긴 가게 안, 어색한 정적 속에서 누군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그것을 신호탄으로 가게 안의 모든 손님들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시뻘게진 저를 보며 한 손님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사장님, 오늘 선곡 덕분에 잠이 확 깼습니다!” 그날 제 카페는 품격 있는 재즈바가 아닌, 유쾌한 동네 댄스홀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어제의 그 학생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며 제게 물었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댄스 타임 없나요? 공부하다 졸릴 때쯤 되면 어제 그 음악이 생각나요.” 저는 멋쩍게 웃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재미있다며, 그걸 ‘사장님 랜덤 플레이리스트’라고 부르자고 했습니다. 실수를 감추기 급급했던 제게, 그 말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한 사장님’이 되려다 ‘웃음 주는 사장님’이 되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들의 가게에도 저처럼 신기술이 몰고 온 웃지 못할 대참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인생 라떼를 내리는,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