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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아니라 '내 사람'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

by 걸이형 202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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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

 

 

"사장님, 시키는 것만 해서 답답하시죠?"

언젠가 한 직원이 퇴사하면서 제게 던진 말이었습니다. 뒤통수를 무거운 쇠망치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저는 나름대로 꼼꼼하게 업무를 지시하고 확인하는,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사장이라고 자부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 눈에는 제가 그저 '믿지 못해서 일일이 간섭하는 답답한 꼰대'로 보였던 겁니다.

'알아서 잘 좀 하지…'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장님들 많으실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직원들이 알아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들의 손발을 꽁꽁 묶고 '알아서 할 기회'를 모조리 빼앗고 있었다는 서늘한 사실을요. 오늘은 월급 봉투보다 더 강력한, 진짜 '내 사람'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제 두 번째 뼈아픈 깨달음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내 손을 거쳐야만 직성이 풀리던 시절

예전에 가게에 아주 똑똑하고 감각 있는 20대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열정이 넘쳤죠. 제가 "신메뉴 개발 한번 해볼래?"라고 운을 띄우자, 그 친구는 며칠 밤을 새워가며 '로제 떡볶이 파스타'라는 기가 막힌 메뉴를 구상해왔습니다. 발표하는 내내 그 친구의 눈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얼마나 반짝이던지요.

그런데 완벽주의에 갇혀 있던 제 눈에는 온통 부족한 것만 보였습니다. "음, 좋은데 소스가 너무 달아. 요즘 손님들은 이렇게 단 거 싫어해. 크림 양을 30% 줄여봐. 그리고 이 하얀 접시보다는 저 파란색 깊은 그릇이 사진이 더 잘 나와. 재료는 이렇게 깍둑썰기 말고, 길게 채 썰어야 식감이 살지." 저는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사사건건 간섭했습니다. 사실상 그 친구의 창의력을 뭉개고 제 입맛과 제 스타일을 강요한 거죠.

결국 '로제 떡볶이 파스타'는 그 친구의 창의력에 제 고집이 덕지덕지 붙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출시됐습니다. 그 친구의 반짝이던 눈은 어느새 생기를 잃고 동태 눈처럼 변해갔습니다. 회의 시간엔 더 이상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고, 딱 제가 시킨 일만 로봇처럼 처리했죠. 몇 달 뒤, 그는 조용히 사직서를 냈습니다.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요. 저는 또 한 명의 보석 같은 인재를 제 손으로 갈아 없앤 셈입니다.


"책임은 내가 질게, 마음껏 해봐."

그렇게 실패의 쓴맛을 보고, 몇 년 뒤 작은 토스트 가게로 재기했을 때였습니다. 홀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매장 디스플레이 변경을 제안해왔습니다. 손님들 동선이 꼬이니 테이블 배치를 바꾸고, 낡은 메뉴판을 디지털 보드로 바꾸자는 거였습니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습니다. 당장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고, 자칫 잘못하면 익숙함을 선호하는 단골들의 불평을 살 수도 있는 위험한 도전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또다시 도면을 펼쳐놓고 제 방식대로 이래라저래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며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직원들을 모두 모은 자리에서 김 매니저에게 말했습니다.

"좋아, 김 매니저. 이번 일은 자네를 믿고 한번 맡겨볼게. 예산은 이만큼일세. 이 안에서 마음껏 해보고, 자네의 감각을 보여주게. 혹시 잘못돼서 손님들 불평이 쏟아지거나 매출이 떨어져도 괜찮아. 모든 책임은 사장인 내가 질게."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의 무게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김 매니저의 어깨가 펴지고, 눈빛이 달라지더군요. 그는 단순히 '지시받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남아 동선을 연구하고, 발품 팔아 중고지만 성능 좋은 디지털 보드를 구해왔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손님들은 훨씬 깔끔하고 편해졌다며 칭찬했고, 테이블 회전율이 빨라지며 덩달아 매출도 조금씩 올랐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오른 것보다 더 기뻤던 건,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해낸 김 매니저의 그 뿌듯한 얼굴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김 매니저는 제 가게의 가장 든든한 기둥, 저의 완벽한 '오른팔'이 되었습니다.


진짜 '내 사람'을 만드는 열쇠는 '월급'이 아니라 '권한'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실패해도 좋다는 '믿음'을 먼저 주는 것이었죠. 사장의 역할은 직원의 모든 실수를 사전에 막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게 도전하고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장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씨앗(직원)을 심고, 좋은 흙(환경)을 주고, 햇볕(믿음)을 쬐어주며 스스로 꽃을 피우게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월급 봉투 수십 개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 걸이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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