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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말, 따라 하려다 '오운완' 을 알게된날~

by 걸이형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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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들, 혹시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남몰래 신조어 공부해 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법 성공적인 ‘비밀 스터디’를 통해 MZ세대와의 언어 장벽을 완벽히 허물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 오만한 믿음이 박살 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저희 가게의 보배, 20대 아르바이트생 김 군이었습니다. 성실하고 싹싹한 친구지만, 가끔 김 군이 동료와 나누는 대화는 저에게 마치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 같았습니다. 언젠가 재고가 똑떨어진 원두를 보며 제가 "큰일이네" 하자, 김 군이 "오히려 좋아, ‘억텐’ 말고 ‘찐텐’으로 쉬는 시간 ‘개이득’"이라 말했을 때, 저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제 가게 안에서 제가 외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벽 같은 사장이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날부터 제 비밀 과외가 시작됐습니다. 손님 없는 시간에 카운터 밑에 숨어 스마트폰으로 ‘MZ 신조어 모음’을 정독하고, 중학생 딸에게 “요즘 애들은 이럴 때 뭐라고 하니?”라며 조심스럽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처음 보는 단어들을 중얼거리며 연습하는 제 모습은 흡사 첫 외국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같았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이 왔습니다. 주말이라 유난히 손님이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고, 김 군과 저는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녹초가 된 김 군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 순간을 위해 갈고닦은 비장의 한마디를 꺼낼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 정말 완벽하게 해냈구나!’ 이 벅찬 감동을 요즘 스타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연습한 대로 자연스러운 척,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김 군! 오늘 정말… 오운완!”

 

순간 가게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제 칭찬에 감동할 준비를 하던 김 군의 얼굴에는 세상 가장 순수한 ‘물음표’가 떠올랐습니다. “네? 사장님… 운동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제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오운완’이 ‘오늘 운동 완료’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오늘 우리 완벽했다’와는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아, 정말 아찔했습니다.

 

“어설픈 지식은 없는 것보다 위험하고, 잘못 쓴 신조어는 안 쓴 것보다 민망하다.”
- 50대 자영업자 걸이형의 ‘인생 라떼’ 한 모금 -

 

결국 김 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배를 잡고 웃으며 ‘사장님, 진짜 귀여우세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 웃음 덕에 저와 김 군 사이의 어색한 벽 하나가 허물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통은 완벽한 언어 구사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쩌면 ‘소통’의 본질을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단어를 쓰는 것만이 소통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조금 서툴고 어색하더라도, 상대의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가려는 그 마음 자체가 어쩌면 가장 진한 ‘인생 라떼’의 풍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제 라떼는 그날, 민망함의 쓴맛과 유쾌함의 단맛이 뒤섞여 아주 오묘한 맛을 냈습니다. 사장님들의 하루도 결국엔 ‘중꺾마’ 아니겠습니까. 늘 응원하겠습니다.

 

- 인생 라떼를 내리는, 걸이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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