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재산이다."
20대 때, 아버지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땐 그 말이 금과옥조인 줄 알았죠. 그래서 사람 만나는 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50이라는 나이를 넘어 반백 년 세월을 정산해보니, 그 말씀은 절반만 맞더군요.
내 시간과 감정, 심지어 돈까지 갉아먹는 '부채' 같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후자를 빨리 알아보고 내 인생의 '삭제' 버튼을 누르는 용기입니다. 그 버튼 한번 누르지 못해서 치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컸으니까요.
오늘은 제가 수억 원짜리 사업을 말아먹는 것보다 더 뼈아픈 수업료를 내고 알게 된, 곁에 둘수록 내 인생만 힘들어지는 사람 유형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유형 1: 말로만 세상을 지배하는 '몽상가'
이들의 입을 열면, 세상은 곧 뒤바뀔 것 같습니다. "형님, 이 아이템 대박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투자만 받으면 끝납니다!" 등등. 늘 미래의 청사진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지만, 정작 그 그림을 그릴 구체적인 붓과 물감은 없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말에 혹할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에 '인생 역전 로또'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 한 후배가 찾아와 '전통시장 상인들을 위한 혁신적인 배달 앱'에 대해 열변을 토한 적이 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어찌나 그럴듯한지, 저도 모르게 '이거 혹시?' 하는 마음에 빠져들고 있었죠.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제 아내가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사업, 돈은 누가 대는 건데요? 설마 또 당신이에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아내의 그 표정, '나는 다 알고 있다'는 그 눈빛 앞에서 그의 화려한 계획은 순식간에 빛이 바랬습니다. 그의 계획 속엔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내용은 쏙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꿈에 감탄해 줄 투자자와, 그 꿈을 대신 실현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누군가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그래서, 첫 삽은 누가 어떻게 뜰 건데?"라고 묻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꿈을 파는 사람보다, 함께 삽을 들 사람을 만나십시오.
유형 2: 만날 때마다 기운 빼놓는 '감정 흡혈귀'
살다 보면 유독 "만나고 나면 기운이 쫙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안부 인사 대신 한숨부터 내쉬고, 칭찬 대신 뒷담화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요.
저에게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랜 친구라 가끔 소주 한잔 기울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가 고역이 되더군요. "부장은 쓰레기야, 아파트는 너무 좁아, 나라는 왜 이 모양이지..." 대화의 90%가 회사 상사 욕, 돈 문제, 세상 탓이었습니다. 그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제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발걸음이 무거웠죠.
어느 날 결심했습니다. 그 친구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바쁘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몇 번 대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더군요. 의리 없다고 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감정과 에너지를 지키는 것 또한 50대의 중요한 의리입니다. 그 친구를 만날 시간에 아내와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제 정신 건강에 백배는 더 이롭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들어주는 것과, 그 불행에 함께 잠식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유형 3: 은근슬쩍 자기 몫만 챙기는 '얌체'
대놓고 사기를 치는 사람보다 더 얄미운 유형입니다. 이들은 단체 생활 속에서 교묘하게 자신의 의무는 피하고, 이익은 누구보다 먼저 챙깁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공동체의 신뢰는 바닥부터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조기축구회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회식 장소를 정하고 인원을 모을 땐 누구보다 목소리가 크지만, 막상 회비를 걷거나 경기 후 골대를 정리할 때면 슬그머니 화장실로 사라집니다. "아, 내가 한 골 넣었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하는 연기력은 거의 주연 배우급이죠.
사람을 볼 때, 큰 사건보다 이런 작은 행동들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 사람의 진짜 품격입니다. 음료수 한 잔 값의 작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국 수천만 원짜리 신뢰를 잃게 마련입니다.
좋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
50이 넘어 깨닫습니다. 새로운 인맥 지도를 그리는 설렘보다, 기존의 관계 지도를 잘 편집하고 정리하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