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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여행 ] 50대 아재의 아얄라몰 생존기

by 걸이형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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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얄라몰 내부 사진

“여보, 우리 쇼핑몰은 무슨… 그냥 리조트에서 망고나 먹다가 가면 안 될까?”

 

세부 도착 다음 날, 기어코 저를 아얄라몰로 끌고 가려는 아내에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뙤약볕 아래 야자수 늘어진 풍경을 기대했건만, 에어컨 쌩쌩 나오는 거대한 쇼핑몰이라니요. 서울에도 널리고 널린 게 백화점인데, 이역만리까지 와서 쇼핑몰 투어는 웬 말이란 말입니까. ‘이럴 거면 동네 스타필드나 가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당신 운동화 다 헤졌잖아!”라는 아내의 등쌀에 결국 흰수건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

 

1. ‘라떼 아재’의 눈에 비친 세부의 심장, 아얄라몰

 

마지못해 따라나선 아얄라몰의 첫인상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더군요. 거대한 공원을 품은 듯한 개방형 구조의 ‘더 테라스’는 숨통을 틔워주었고, 세계적인 명품 매장 옆에 필리핀 현지 브랜드들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모습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 눈길을 끈 것은 쇼핑몰 한가운데를 차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명품 쇼핑백을 든 부유한 관광객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유모차를 끈 젊은 부부, 그리고 저희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의 외국인 아저씨까지. 활기 넘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저는 세부의 진짜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삶과 일상이 녹아 있는 거대한 사랑방 같았달까요.

 

“아빠, 저기 망고 아이스크림! 줄 장난 아니다. 저기 무조건 맛집이야!”

 

아들 녀석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이 쌓이는 공간이었습니다. ‘쇼핑몰은 다 똑같다’는 저의 섣부른 편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2. 게리스 그릴에서 맛본 ‘단짠’ 인생의 맛

 

쇼핑몰을 몇 바퀴 돌았을까요. “배고프다”는 가족들의 아우성에 저희는 한국인들의 ‘세부 성지’라는 게리스 그릴로 향했습니다. 오징어 구이인 이니하우 나 푸싯과 족발 튀김인 크리스피 파타, 그리고 불랄로, 시식, 양이 어마어마한 마늘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소스가 밴 오징어 구이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단짠단짠한 그 맛이 꼭 제 인생 같아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의 달콤함과 실패의 쓴맛을 본 후 맛보는 재기의 짭짤함이랄까요. 곁들여 시킨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 한 잔이 그 모든 맛을 부드럽게 감싸주었습니다.

 

“아빠는 오징어가 그렇게 좋아? 아주 얼굴에 ‘나 행복해요’ 쓰여있네.”

 

딸의 놀림에 그저 웃었습니다. 사실 저는 음식을 통해 위로받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나누는 것. 어쩌면 행복은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창한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앞의 소박한 한 끼 식사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게리스 그릴의 한마이리의 오징어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3. 길을 잃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식사 후 아내는 신발을, 아이들은 기념품을 사겠다며 흩어졌고 저는 졸지에 대형몰 안에서 미아가 되었습니다. 낯선 쇼핑몰에 홀로 남아 잠시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여행이란 어쩌면 길을 잃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늘 정해진 길,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제게 아얄라몰에서의 ‘의도치 않은 멈춤’은 잠시 숨을 고를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족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저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결국 아내 손에 이끌려 새 운동화 하나를 사 들고 나왔지만, 제 마음속에는 그보다 더 값진 무언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헤맬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인생이라는 낯선 여행지에서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혹시 당신도 늘 정해진 길 위에서 초조해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초조함이란 길을 잃은게 아닌데 성급함에서 나오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걸이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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