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계약을 성사시킨 날, 혹은 목표했던 매출을 드디어 달성한 날. 이런 날은 어김없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생각납니다. 얼음이 쨍그랑거리는 소리, 입안에 퍼지는 쌉싸름하고 깔끔한 맛. 마치 "해냈어!"라고 외치는 제 자신에게 주는 상장과도 같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그 맛은 성공의 명쾌함을 닮았습니다.
성공의 맛은 아메리카노처럼 명확하고 단순합니다. 투입한 노력에 대한 정직한 결과물이며,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이 아메리카노의 맛에 중독되어 살았습니다. 더 많은 성공, 더 짜릿한 성취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성공이라는 카페인을 끝없이 갈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짜릿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만 계속 마시면 속이 쓰리듯, 성공에만 취해 있다 보면 어느새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잃고 방향감각마저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성공한 메뉴가 하나 나왔다는 이유로 다른 메뉴에 대한 고객의 불평에 귀를 닫고, "내가 맞아"라는 오만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성공의 아메리카노는 때로는 가장 달콤한 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어디 아메리카노만 마시며 살 수 있던가요.
야심 차게 준비했던 신메뉴가 처참하게 외면받았던 비 오는 날, 믿었던 직원에게 뒷통수를 맞았던 텅 빈 가게 안에서, 더 이상 가게 문을 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을 새웠던 그 순간. 그런 날 마셨던 것은 아메리카노가 아니었습니다. 차갑고 쓰디쓴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부드럽고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이었습니다.
실패의 순간에 마시는 라떼는 성공의 아메리카노와는 전혀 다른 맛을 냅니다. 우유의 부드러움이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감싸 안듯, 실패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조용히 위로해 줍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고, "너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 라떼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위로를 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라떼의 우유 거품 아래에는 실패의 원인이 된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시간을 빌려, 그 실패의 쓴맛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습니다. 첫 한 모금은 그저 쓰기만 합니다. 실패의 기억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두 번째 모금부터는 따뜻한 우유가 들어오며 비로소 '왜?'라는 질문을 던질 힘을 줍니다. 성공에 취해서는 결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라떼 한 잔의 온기 속에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아메리카노는 우리에게 '무엇을 얻었는지'를 보여주지만,
실패의 인생 라떼는 우리에게 '무엇을 놓쳤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만, 사실 배우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이 방법이 통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입니다. 하지만 인생 라떼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너무 자만했던 것은 아닐까? 고객의 목소리보다 내 고집을 앞세운 것은 아닐까?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이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진짜 교사입니다.
실패라는 쓰디쓴 에스프레소 원액을 마셔본 사람만이 라떼의 부드러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노만 찾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표정, 가게의 작은 문제점, 그리고 제 자신의 부족함까지도 인생 라떼는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저도 여전히 성공의 아메리카노를 사랑합니다. 그 짜릿한 성취감은 사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제 인생의 깊이를 더하고, 저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화려한 성공의 순간들이 아니라, 구석에서 홀로 마셨던 수많은 인생 라떼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요즘은 성공의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조차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라떼의 부드러운 맛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것이 아마도 실패가 남겨준 겸손이라는 것이겠지요.
오늘 당신의 잔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성공의 아메리카노입니까, 아니면 실패의 인생 라떼입니까?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각자의 잔에는 모두 다른 무게의 배움이 담겨 있을 테니까요.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