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
"나 때는 말이야, 시키는 건 군말 없이 다 했어."
또래 사장님들끼리 모이면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입니다. 저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제 방식이 곧 '정답'이었고, 저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당연히 제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였습니다.
그런 저의 굳어있던 머리를 '말랑'하게 만들어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작년에 저희 가게에서 6개월간 일했던 스물세 살 '민지'라는 친구입니다. 소위 말하는 'MZ세대'의 표본 같은 친구였죠.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처음에는 그런 민지가 참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그 '불편한' 알바생 덕분에, 돈 주고도 못 살 '요즘 리더십'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 수 1: "사장님, 이건 비효율적인데요?" - 권위보다 '효율'을 따르는 세대
사건은 제가 야심 차게 '수기 장부'를 도입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매일매일 재고 현황을 손으로 직접 써야 직성이 풀리는 아날로그 세대인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업무 방식이었죠. 그래야 재고 하나하나에 애정이 생기고, 숫자가 머리에 콕 박힌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민지는 첫날부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이거 왜 손으로 써요? 엑셀로 만들면 5분이면 끝날 일인데요. 저희 학교 앞 카페는 포스기랑 연동해서 자동으로 다 되던데요?"
속으로 '어린 게 뭘 안다고' 하는 반발심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민지야, 그래도 손으로 써야 재고 하나하나에 애정이 생기고 실수가 없는 거야. 이게 우리 가게 방식이야." 라떼 향이 물씬 풍기는 제 대답에, 민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알겠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민지는 저에게 엑셀 파일 하나를 툭 내밀었습니다. 간단한 함수까지 걸어서, 품목 이름만 넣으면 재고 수량이 자동으로 계산되고, 안전 재고 이하로 떨어지면 빨간색으로 표시까지 되는 파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내 방식'과 '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권위를 지키려 했지만, 민지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명확한 본질을 좇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중요한 건 '누가 시켰는가'가 아니라, '이 일이 합리적인가'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할 때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게 정말 최선의 방법인가?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내가 모르는 더 좋은 방법이 있진 않을까?" 라떼를 내려놓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한 수 2: "사장님, 저 오늘 연차 좀 쓸게요." - 희생보다 '권리'를 존중하는 세대
한창 바쁜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예약 전화가 빗발치고 홀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죠. 그런데 민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죄송한데 저 다음 주 금요일에 연차 좀 쓸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해서요. 지방에서 하는 거라 하루는 꼭 빼야 해서요."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 때는 가게 바쁘면 집안일도 제쳐두고 나왔는데, 고작 콘서트 때문에 제일 바쁜 금요일을 뺀다고?' 목구멍까지 '라떼는 말이야'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대신, 저는 딱 3초만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민지가 요구한 것은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라는 것을요.
존중은 직급을 막론하고 존중을 낳는 법이었습니다.
제가 '가게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을 최고의 책임감이라 여겼지만, 민지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내 몫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책임감이라 여겼습니다. 그녀는 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뺀적이 없었고, 누구보다 성실했습니다. 그녀의 연차 사용은 '희생의 부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제게는 '콘서트'가 별일 아니었지만, 민지에게는 삶의 활력을 주는 중요한 이벤트였던 거죠.
결국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티켓팅 성공했다니 축하한다! 완전 피 튀기는 경쟁이라던데. 재밌게 놀다 와. 그날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날 민지의 얼굴에 번졌던 환한 미소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결국 '라떼'는 버리고 '라떼'를 얻다
민지는 6개월 뒤 학교로 돌아갔지만, 저에게는 많은 것을 남겨주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리더십이란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정당한 권리를 존중해주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의 경험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유연함.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의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저처럼 '요즘 애들' 때문에 속앓이하는 사장님들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우리 '라떼'는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불편하고 당돌하게 들릴지라도, 어쩌면 그 불편한 목소리 속에, 우리 가게와 우리 자신을 성장시킬 가장 확실한 '인생 라떼' 한 잔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