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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세부 살이를 선언한 50대 남편에게 아내가 던진 한마디...

by 걸이형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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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부에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

 

뜬금없이 세부 살이를 선언한 50대 남편에게 아내가 던진 한마디

 

“여보, 나… 다 정리하고 세부 가서 살까?”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조심스럽게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지난 세부 여행의 감흥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망고주스 대신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아내는 잠시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는 딱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당신, 또 사업 말아먹을 일 있어요?”

 

가슴에 비수가 꽂혔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저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벌이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피가 아니라고, 이것은 ‘발견’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습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마저 활기차게 들렸던 세부의 거리, 주름진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던 시장 상인의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 끈적한 땀을 식혀주던 산미구엘 맥주 한 병의 여유. 그 모든 것이 제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

 

1. ‘느림’의 미학, 혹시 이곳에 내 인생의 정답이?

 

서울의 시계는 너무 빠릅니다. 쉰이 넘은 제 걸음으로는 이제 숨이 찹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하기 바빴습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평생 제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그런데 세부의 시간은 달랐습니다. 약속 시간에 30분쯤 늦는 것은 예사고, 주문한 음식이 한참 뒤에 나와도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어느새 저 또한 그 ‘느림’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해 질 녘이면 붉게 물드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모래의 감촉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 돈 버는 일 말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쓰는 법을 저는 그곳에서 어렴풋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빨리빨리 움직여야 성공하지만, 여기서는 여유를 가져야 행복할 것 같아.”

 

제 말에 아들은 “아빠, 그거 그냥 더워서 그런 거야”라며 핀잔을 줬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날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경쟁 대신 공존을, 속도 대신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이 제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습니다.

 


 

2. 망고나무 아래, 월세 50만 원짜리 행복을 꿈꾸다

 

현실적인 계획도 세워봤습니다. 한국의 작은 아파트 전세금이면 세부 외곽에 아담한 집을 얻고, 작은 식당이나 가게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화려한 성공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갓 잡은 해산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팔고, 오후에는 가게 문을 닫고 스노클링을 즐기는 삶. 저녁에는 마당의 망고나무 아래서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소박한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물론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언어 문제, 자녀 교육, 불안한 치안, 그리고 가장 큰 문제인 ‘돈’. 하지만 제 마음속 저울은 자꾸만 세부 쪽으로 기웁니다. 월 500만 원을 벌어도 늘 불안한 한국에서의 삶과, 월 150만 원을 벌어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세부에서의 삶. 어느 쪽이 더 ‘남는 장사’일까요?

 

아내는 여전히 반신반의합니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제게 ‘느리게 사는 법’이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봐야, 진짜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3. 아직은 꿈, 그러나 가슴 뛰는 계획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의 ‘세부 이주 프로젝트’는 일단 보류되었습니다. 아내의 현실적인 조언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니, 당장 모든 것을 정리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꿈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5년, 딱 5년만 더 이곳에서 치열하게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면 아내와 함께 다시 세부행 비행기에 오를 겁니다. 그때는 여행객이 아닌, ‘세부 도민’으로 살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날을 위해 저는 내일부터 다시 새벽같이 일터로 나갈 겁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다를 겁니다. 제게는 이제 땀 흘려야 할 분명한 이유와 달콤한 꿈이 생겼으니까요. 세부의 푸른 바다를 닮은 그 꿈이 있기에, 서울의 팍팍한 현실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인생 2막’의 꿈은 무엇인가요?

 

걸이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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