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업하는 사람치고 돈 때문에 밤새워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어음 막을 돈이 모자라 온갖 곳에 전화를 돌리던 밤,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창고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던 밤. 피가 마르고 속이 타들어 가는 그런 밤들이 있었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50 평생을 돌아보니, 정말 제 기억 속에 지독한 흉터처럼 남은 불면의 밤들은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 때문이었죠.
10년을 가족처럼 믿었던 직원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날, 동업자와 서로 못 볼 꼴 보이며 갈라서던 날, 제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회사를 떠났던 후배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던 날.
그런 날 밤이면, 침대에 누워도 몸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그 사람의 얼굴, 그날의 대화, 그때의 분위기가 흑백 영화처럼 무한 반복됐습니다. 돈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아프다’라면, 사람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파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장이 푹푹 파여나가는 것 같았죠.
대체 왜 그럴까요? 돈 문제보다 사람 문제가 왜 우리를 더 깊은 잠 못 들게 만드는 걸까요?
1. 돈은 ‘숫자’지만, 사람은 ‘서사’이기 때문이다.
사업상 손실은, 아무리 액수가 커도 결국 숫자로 정리됩니다. 마이너스 얼마, 손실률 몇 프로. 물론 뼈아프지만, 명확한 계산이 가능하죠. 하지만 사람을 잃는 것은 다릅니다. 그건 숫자가 아니라, 나와 그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가던 한 편의 ‘이야기’가 통째로 지워지는 일입니다.
함께 웃고 떠들었던 시간, 위기를 같이 넘기며 나눴던 소주 한 잔, "사장님 덕분입니다"라며 건네던 진심 어린 눈빛, 우리가 함께 꿈꿨던 미래. 그 모든 서사가 한순간에 부정당하고 폐기처분되는 겁니다. 컴퓨터로 치면 단순히 파일 하나를 지우는 게 아니라, 하드디스크 전체를 포맷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빈 하드디스크를 보며 느끼는 허무함. 그 공백이 너무 커서, 우리는 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2. 돈은 ‘시스템’이지만, 사람은 ‘신뢰’이기 때문이다.
돈 문제는 대부분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은행 대출이 막히면 다른 금융권을 알아보고, 매출이 떨어지면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합니다.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는 ‘방법론’의 영역이죠.
하지만 사람 문제는 ‘신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터집니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그 어떤 시스템으로도 복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믿었던 만큼, 배신의 상처는 더 깊게 파고듭니다. 밤새도록 "내가 뭘 잘못 생각했을까?",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복기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정답이 없는 시험 문제를 밤새 붙들고 있는 기분. 그러니 잠이 올 리가 없죠.
3. 돈 문제는 ‘극복’의 대상이지만, 사람 문제는 ‘소화’의 대상이다.
돈 문제는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 언젠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해서 메꾸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죠.
그러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소화’의 대상에 가깝습니다. 마치 잘못 먹은 음식이 계속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 기억은 문득문득 나를 찾아와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 웃다가도, 비슷한 상황만 마주치면 울컥하고 심장이 내려앉습니다. 이 ‘소화불량’ 같은 기억이, 매일 밤 우리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돌아봤다
젊은 시절, 저도 사람보다 숫자를 더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직원의 마음보다 장부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죠. "사업은 냉정한 거야"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결국 그런 태도가 사람들을 떠나게 하고 더 큰 실패를 불러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지키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고수익 투자라는 것을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 고통의 깊이는, 당신이 그만큼 그 관계에 진심을 쏟았다는 증거입니다.
마무리
쉽게 잠들지 못하는 그 밤들이, 당신을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오늘 밤도 뒤척일 당신에게, 이 ‘인생 라떼’ 한 잔이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랍니다.
-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