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습니다. 단골 호프집 구석 자리에 앉아 혼자 맥주 한잔하고 있었죠.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발바닥은 불타는 것 같았고, 머릿속은 온갖 걱정이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했습니다. 그냥 시끄러운 술집 소리에 잠시 묻히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귀를 잡아끌었습니다.
50대쯤 돼 보이는 부장님과 20대 후반쯤 되는 젊은 직원. 표정만 봐도, 부장님은 술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고, 직원은 이미 체력이 바닥나 보였습니다.
직원: “부장님, 이번 프로젝트 진짜 쉽지 않네요.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와요.”
부장: “야, 나 때는 말이야,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내가 신입일 땐 말이야, 전화기 하나 들고 전국을 누비면서…”
아, 또 시작이구나. 부장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눈빛에는 ‘내 무용담을 들어라’는 자부심이 번쩍였습니다. 하지만 맞은편 직원의 시선은 이미 멀리… 멀리…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듯했죠. 말은 대화였지만, 사실상 혼잣말에 가까운 ‘꼰대 라떼’ 타임이었습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차를 정비하러 동네 카센터에 갔는데, 안쪽 작업장에서 사장님과 이제 막 일을 배우는 젊은 기술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기술자: “사장님, 이거 제가 뭘 잘못 건드린 것 같습니다. 자꾸 헛돌아요. 큰일 났네요.”
사장: “어디 보자… 아, 이거. 나도 너만 할 때 이거 때문에 사수한테 욕 바가지로 먹었거든. 나도 그랬는데 말이야, 이럴 땐 반대로 한 번 돌려봐. 딱 맞물릴 때가 있을 거야.”
놀라웠습니다. 두 대화 모두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듣는 사람 표정과 공기의 온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호프집 직원의 표정이 무기력하게 닫혀 있던 것과 달리, 카센터 기술자는 눈빛이 반짝였고,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시도해보더군요.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대체 뭐가 이렇게 다른 걸까?”
1. 화살표가 누구를 향하는가
라떼 얘기는 대체로 ‘과거’를 꺼내면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거가 ‘누구’를 향해 날아가느냐입니다.
‘꼰대 라떼’의 화살표는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 뒤에는, ‘이렇게 대단했던 나를 좀 인정해라’는 욕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힘들어하는 후배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 속에 사는 나 자신입니다. 듣는 사람은 조연도 아닌, 그냥 무대 뒤에서 박수 치는 관객이 돼버리죠.
반면 ‘인생 라떼’의 화살표는 상대방을 향합니다. “나도 그랬는데…”라는 말에는 ‘네 마음, 나도 알아’라는 공감이 담겨 있습니다. 카센터 사장님은 과거의 자신을 소환했지만, 그건 자랑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기 위해서였습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는 면죄부를 주고, 실수에서 빨리 벗어나게 도와주려는 마음이었죠.
2. 재료가 뭐냐
‘꼰대 라떼’는 번쩍거리는 성공담만 꺼냅니다. 왕년에 내가 뭘 해냈고, 누가 못한 걸 해냈으며, 어디서 인정받았는지. 확실히 멋있고 대단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요? 나보고 어쩌라는 거죠?”라는 생각이 들기 쉽죠.
‘인생 라떼’는 실패담이라는 재료를 아낌없이 씁니다. 제가 예전에 ‘걸이의 키친’을 말아먹었을 때 얘기를 꺼내면, 오히려 장사하는 사람들은 눈빛이 달라집니다. 1억을 날리고도 버텼던 얘기, 손님 말을 무시했다가 큰코다친 경험. 그런 이야기에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날것’의 이야기에서 더 큰 위로와 현실적인 교훈을 얻습니다.
3. 목적이 뭐냐
‘꼰대 라떼’의 목적은 ‘존경’입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하니 나를 존경해라.” 하지만 존경은 요구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요하면 반발심만 키웁니다.
‘인생 라떼’의 목적은 ‘연결’입니다. 나와 너 사이에 다리를 놓고, ‘같은 편’이라는 감각을 만드는 거죠. “나도 너처럼 힘들었고, 너도 이겨낼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존경 요구가 아니라, 함께 가자는 제안이 담겨 있습니다. 카센터 사장님은 그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나도 돌아봤다
나이 들면 저절로 인생 선배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말투 속에 ‘꼰대 라떼’가 슬며시 스며드는 걸 느꼈습니다. 조언을 빙자한 자랑, 위로인 척하는 평가. 그걸 알아차리고 나니,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이 얘기의 화살표는 지금 나를 향하고 있나, 아니면 너를 향하고 있나?”
“이 재료는 성공담뿐인가, 실패담도 있나?”
“나는 지금 존경을 원하나, 연결을 원하나?”
마무리
꼰대와 인생 선배의 차이는 아주 얇습니다. 하지만 그 얇은 ‘한 끗’이 대화의 온도를 완전히 바꿉니다.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라떼는 식어버리지만, 공감으로 건네는 라떼는 오래 따뜻합니다.
혹시 오늘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게 된다면, 잠깐 멈춰서 이 세 가지를 떠올려 보세요. 화살표, 재료, 목적. 그 순간, 당신의 라떼는 꼰대가 아니라 인생이 될 겁니다.
- 걸이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