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절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투명인간'이었습니다. 이상하죠? 누구보다 많은 역할을 해내고,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뛰어다녔는데, 정작 '나'라는 존재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는 '돈 버는 아빠', 가게에서는 '월급 주는 사장'. 그 역할들만 남은 채, 인간 '걸이형'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어느 날 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현관문을 열었지만, 거실에는 정적만 흘렀습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울타리 안에서, 저는 제 감정과 고뇌를 잃어버린 투명인간이었습니다.
밖에서 온갖 진상을 상대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은 헤드셋을 낀 채 컴퓨터 화면에 빠져있었고, 아내는 드라마를 보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아내가 리모컨으로 TV 소리를 줄이며 건넨 첫마디는 "오늘 저녁은 먹고 왔어요?"였습니다. 분명 저를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 제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 누구도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무슨 힘든 일은 없었어요?"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이미 '밖에서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겁니다.
직장에서도, 나는 'ATM 기계'였다
직장이라고 달랐을까요? 오히려 더 심했습니다. 직원들은 제 앞에서는 늘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제가 없는 흡연실이나 회식 2차 자리에서 오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직원들 상여금을 다음 달로 미뤄야 하는 힘든 결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해의 눈빛이 아니라, '결국 우리 월급으로 자기 손해 메꾸려는 거 아냐?' 하는 불신의 수군거림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함께 고생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저 월급날짜만 정확히 지키면 되는 'ATM 기계' 같은 존재였던 겁니다. 내 결정 뒤에 숨겨진 수많은 고민과 밤샘, 그리고 개인적인 희생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감정 없는 결정권자. 그게 40대 사장,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깊은 외로움과 무력감에 빠져 지냈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술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죠. 그러다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든 것은 가족이나 직원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무시당할 거라 생각했죠. 아내에게는 늘 "괜찮아, 별일 없어"라고 말했고, 직원들에게는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갑옷만 보고 그 안의 저를 보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작은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퇴근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었는데, 집에 가서 당신이랑 맥주 한잔하면서 얘기하고 싶어"라고 먼저 말해봤습니다. 직원 회의에서는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때?"라며 제 고민을 먼저 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 속마음을 열자, 상대방도 자신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제 등을 두드려주며 자신의 속상했던 이야기를 꺼냈고,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투명 갑옷'을 벗는 순간, 비로소 사람들의 눈에 '인간 걸이형'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혹시 지금, 저처럼 '투명인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40대 사장님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저녁, 딱 한 번만 용기를 내어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그 '역할'이라는 갑옷을 잠시 내려놓고, 당신의 진짜 속마음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보여주세요.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 때, 세상도 당신을 다시 보기 시작할 겁니다.
- 걸이형 드림